한 번역자가 말했듯이 구글은 ‘번역자의 친구’다. 구글을 통해서 거의 언제나 번역자의 까치둥지 같은 머리가 필요로 하는 진기한 자료의 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다.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서 카렌 두베의 Dies ist kein Leibeslied (This Is Not A Love Song)에 나오는 많은 밴드들과 그들의 노래 가사들을 캐내기도 했다.
카렌은 친절하게도 자신의 소설을 번역할 때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카렌을 귀찮게 하지 않고 그럭저럭 이 소설에 나오는 관련 참고 자료들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번역자마다 다른 방법을 취한다. 어떤 번역자들은 먼저 책을 통독하며 저자에게 질문할 사항을 추려낸다. 물론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저자가 생존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몇 년 전에 내가 번역한 E.T.A. 호프만의 Kater Murr (Tomcat Murr)는 몇 군데 주석註釋을 달 필요가 있었다. 펭귄 클래식의 우수한 편집자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호프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연구서도 몇 권 찾아보았지만 모두 그 부분들은 아예 무시되어 있었다. 저자들은 대개의 경우 기꺼이 질문에 응답한다. 게다가 간혹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있다.
우베 팀의 Am Beispiel meines Bruders 에 관한 얘기다. 이 책은 미국에서 In My Brother's Shadow 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 저자가 만든 새로운 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었다. 오래 전에 죽은 형에 대한 꿈을 기억하고 얘기할 때 나온 Doldenhilfe 라는 말인데, 아무 의미 없는 일종의 혼합어로서 신조어 neologism 였다. 이 책은 팀 박사 가족에 대한 회고록인데 이것을 번역한 번역자들이 모두 그 말이 무슨 단어인지 문의를 해왔다고 한다. 만일 이와 같은 의문스러운 점이 있음에도 저자에게 묻지 않으면 결과는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Band-Aid 에서 유추하여 그 (자선사업을 의미하는) 말을 ‘Floweraid’로 번역했다. 전문적인 식물학 용어인 ‘umbel’은 식물학자가 아닌 독자에게는 좀 어려운 단어이기 때문에 flower 로 대신했다. [Dolde = umbel (산형繖形 화서). Hilfe = help.]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 내가 아는 여러 번역자들이 그렇듯이 - 문제점들이 있거나 외연을 추적해야 할 때, 저자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것은 내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Showing posts with label Anthea Bell.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Anthea Bell. Show all posts
Thursday, February 5, 2009
Tuesday, February 3, 2009
안시아 벨의 번역 이야기 (3)
nbg (new books in german) 라고 하는 1년에 2회 발행되는 간행물이 있다. 이름이 가리키듯이 이 잡지는 최근에 출간되었거나 조만간 출간할 예정인 독어권(독일, 오스트리라, 스위스) 작품들을 영어권의 출판사들에게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회 원작 출판사 중에 한둘은 편집 위원회에 초청된다. 나도 편집 위원 중 한 사람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아이히보른 출판사가 출간한 ‘레건로만 Regenroman’ 은 nbg 에 제출된 타이틀 중 하나였다. 그런데 nbg 가 의뢰한 평가자들 reader 중에 ‘레건로만’을 맡은 평가자는 이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nbg 는 매회 출판사들이 제출하는 100권 가량의 책들 중에서 20여 권만을 선정해서 이들에 대한 서평을 싣는다. 그런데 ‘레건로만’은 선정되지 않았다. 편집 위원회는 상당수의 타이틀에 대해서 평가자들의 의견을 따른다. 아무도 그 모든 책들을 전부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그때 객원 편집위원이었던 로즈메리 데이빗든이 평가자의 ‘레건로만’ 요약을 읽고 흥미가 발동해서 ‘레건로만’을 자신이 직접 읽어보고는 영역본에 대한 판권을 샀다.
나는 ‘레건로만’을 읽기 시작하면서 과연 이 책이 nbg 에 포함되었어야 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번역에 착수해서 재미있게 번역하며 어느 정도 진행했을 때 이 책의 스타일의 독창성과 장점을 더욱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번역이라는 정밀 작업은 질산으로 하는 시금試金 작업이다. nbg 의 평가자는 그런 연장된 작품 요소들을 식욕이상증진 bulimia 의 에피소드로 보지 못했고 화염 총을 사용한 살인 장면을 문맥상에서 보지 못했다. 문맥상으로 볼 때 그런 구성 요소들은 결코 충격이나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소설의 구성에 적합한 것임을.
나는 ‘레건로만’을 읽기 시작하면서 과연 이 책이 nbg 에 포함되었어야 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번역에 착수해서 재미있게 번역하며 어느 정도 진행했을 때 이 책의 스타일의 독창성과 장점을 더욱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번역이라는 정밀 작업은 질산으로 하는 시금試金 작업이다. nbg 의 평가자는 그런 연장된 작품 요소들을 식욕이상증진 bulimia 의 에피소드로 보지 못했고 화염 총을 사용한 살인 장면을 문맥상에서 보지 못했다. 문맥상으로 볼 때 그런 구성 요소들은 결코 충격이나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소설의 구성에 적합한 것임을.
Labels:
Anthea Bell,
Translation Theory,
Translator
Monday, February 2, 2009
안시아 벨의 번역 이야기 (2)
번역자 협회가 속해 있는 작가 협회의 정기 간행물인 “작가 The Author”誌 최신호에 좋은 기사가 났다. 이 기사에서 에릭 디킨스는 영역 작품의 상대적 기근을 개탄한다. 그는 또한 많은 문학 번역자들이 전문적인 시각을 가지고, 신뢰할 만한 판단을 스스로 해서 번역할 만한 책을 출판사에 제안할 것을 권한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대개 적어도 절반 정도는 그런 식으로 일이 성사된다. 어떤 책에 대해서 세심할 정도로 솔직한 평가를 해주는 것은 원고/도서 평가자 reader 로서의 번역자가 해야 할 일이다 - 출판사들은 대개 원작을 읽어낼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외국어로 된 책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콜리지 Samuel Coleridge 가 어디에선가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이 외국어 서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근한 만족감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우리가 번역자가 출판사를 위해서 대신해서 책을 읽을 경우, 사정은 다르다. 실제로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출판사에 책을 추천함에 있어서 극도로 신중해야 하는 것은 평가자 reader 의 임무인 까닭이다. 한편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한 번역 제의를 출판사로부터 받을 때는 먼저 그 책을 읽어본 다음에 그 일을 맡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번역자들은 실제 번역 과정이 그 책에 대한 어떤 시험대가 되는지 잘 안다. 어떤 책을 읽고 그것을 번역 출간하도록 권해서 출판사가 그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했을 경우, 번역자는 적어도 번역이 끝날 때쯤이면 자신이 옳은 평가를 내렸는지 아닌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국어로 된 책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콜리지 Samuel Coleridge 가 어디에선가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이 외국어 서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은근한 만족감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Labels:
Anthea Bell,
Translation Theory,
Translator
Sunday, February 1, 2009
안시아 벨의 번역 이야기 (1)
영국의 저명한 번역가 안시아 벨(b. 1936)의 번역 이야기에서 흥미롭거나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우리말로 옮긴다. 시간 나는 대로 매일 조금씩 번역해서 올릴 것이다.
Regenroman 의 영역본 제목은 Rain 이다.두운頭韻이나 분위기 면에서 두운을 보나 소설의 분위기를 보나, Rain 보다 더 독어 원작의 제목과 어울릴 제목이 없었겠지만, 나는 아직도 원작의 제목이 좀 약해진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분위기가 - 비유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분위기가 -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각 장의 제목은 일기예보에서 쓰는 말이다. 내가 출판사에 제안한 제목은 A Rainy Story 이다. 하지만 나는 내게 제목을 생각해내는 특별한 재주가 없음을 잘 안다. 그뿐 아니라 기실 나는 내가 번역할 책의 원제가 고유명사일 경우, 나는 안도의 숨을 때는 안도의 숨마저 쉰다. W.G. 제발드의 “아우슈털리츠 Austerlitz”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 . . 제목이 고유명사일 경우에는 번역자로서나 번역서 출판사로서나 별문제가 없다.
원제가 고유명사가 아니고 노래의 제목인, 카렌 두베 Karen Duve 의 Dies ist kein Leibeslied (This Is Not A Love Song)의 경우에도 별문제가 없다. 나는 이 책을 2004년 5월에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강의 초고 작업만해놓았을 해놓은 시점에서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세미나의 참석자들은 내가 그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책의 내용에 나오는 1970년대의 독일 팝송 가사 중 특정 부분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내게 물었다. 그러나 나는 대강의 초고만을 마쳤기 때문에 정확한 똑 부러진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번역자들은 저마다 번역자마다 제각기 모두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 있다. 내 방식은 먼저, 최대한 빨리, 첫 대충 초고를 끝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1차 개고와 2차 개고는 좀더 천천히 진행한다. 내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초고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의문 사항이나 문제점들은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이 나중 부분에서 나중에 그 해답이 주어지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번역자들은, 흡족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 지나간다는 초조한 생각에 조바심을 내고, 초고부터 모든 것을 다듬어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아는 어떤 번역자는 번역할 책을 번역에 앞서 한번도 읽어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윌리스 반스토운 Willis Barnstone 이 그의 책 “번역의 시학 The Poetics of Translation”에서 규정한 경험을 십분 만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번역은 특정한 종류의 독서, 즉 원작 텍스트에 대한 “정밀 독서”가 되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 번역자가 번역할 책을 먼저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번역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지, 난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번역자는, 번역할 책의 장단점, 그리고 그 책이 출판사의 출간 목록에 끼어서 어울리는지 등에 관해 출판사에 소견을 말해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번역할 책을 번역하기 전에 먼저 읽어보았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러하다. 학자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 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소설을 특별히 선호하지만 - 여러 분야의 책을 번역하는 현역 번역자로서 하는 얘기다.
Regenroman 의 영역본 제목은 Rain 이다.
원제가 고유명사가 아니고 노래의 제목인, 카렌 두베 Karen Duve 의 Dies ist kein Leibeslied (This Is Not A Love Song)의 경우에도 별문제가 없다. 나는 이 책을 2004년 5월에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강의 초고 작업만
번역자는, 번역할 책의 장단점, 그리고 그 책이 출판사의 출간 목록에 끼어서 어울리는지 등에 관해 출판사에 소견을 말해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번역할 책을 번역하기 전에 먼저 읽어보았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러하다. 학자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 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소설을 특별히 선호하지만 - 여러 분야의 책을 번역하는 현역 번역자로서 하는 얘기다.
Labels:
Anthea Bell,
Translation Theory,
Translator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