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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9, 2009

아, 무정!

번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포스트는 이 블로그에서는 쓰지 않으려 하는데 작금의 어처구니없는 비극적인 사태가 나로 하여금 자꾸 한눈을 팔게 하여 또 방백을 올린다. 2년 전쯤인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무차별 폭격 기사와 사진을 보고 느꼈던 불편함을 기록했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 설교 강단에서 사랑과 공의와 긍휼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고 이에 화가 났었다. 현재 가자 지구에서 도저히 말이 않 되는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짐에도, 여전히 침묵하는 미국의 기독교단과 대다수 일반인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이 글이 생각났다. 살림살이가 너무 힘들어져서 마음의 여유들이 없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워지기 전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별다를 바 없었던 점을 상기하면 반드시 경제 탓만도 아닌 듯하다. 정부와 미디어의 선전활동 progaganda 이 성공한 것일까?

리타니 강 북쪽을 향해
마을을 빠져나가던 양민들의 차량 행렬이
이스라엘군의 헬리콥터 폭격을 받았다
마을을 비우라는 그들의 경고에 따르던 양민들

11일간 계속된 남부 레바논
무차별 폭격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12살 먹은 아바스 샤이터가 마을을 빠져나가다
무차별 폭격에 할머니와 삼촌을 잃고
홀로 망연자실하는 모습은
그 큰 눈망울에 고여 있는 눈물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더욱더 힘들고 역겨운 것은
그들이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부시가 본어겐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무조건 부시 행정부를 두둔하는
기독교인들이다 - 나와 같은 기독교인들

순종이 제사에 앞서지 않던가
긍휼이 제사에 앞서지 않던가
공의가 순종 아니던가
공의가 제사에 앞서지 않던가

아바스 샤이터의 비극에 눈을 감고
갈채를 보내는 이들이여
아이의 눈물도 마시려오

Wednesday, January 7, 2009

And Then There Was None.

처음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로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노동조합원들을 잡으로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나를 잡으로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말을 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마틴 니뮐러 목사 (1892-1984)
영어 번역시는 여기에.
Translated by Gene

나는 이 시의 밑에서 3째 줄 위에 다음을 보탰으면 한다:

이번에는 그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잡으로 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Tuesday, January 6, 2009

Grieve Not.

Ode ('There was a Time')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In the primal sympathy
Which having been must ever be,
In the soothing thoughts that spring
Out of human suffering,
In the faith that looks through death,
In years that bring the philosophic mind.


한때 그렇게 빛나던 광휘光輝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 하여도,
푸른 초원의 찬란함과 꽃의 영광을
아무것도 돌려놓을 수 없다 하여도,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이제껏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원초적인 동정심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싹트는
위안이 되는 생각에서,
죽음 너머를 보는 믿음에서,
달관한 마음을 가져다주는 세월에서.

William Wordsworth
Translated by Gene

Monday, January 5, 2009

To Turn Again

재의 수요일 Ash-Wednesday

이 사람의 재능과 저 사람의 식견을 원하며
다시 선회旋回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바라지 않기 때문에
선회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애써 얻으려 애쓰지 않으니
일상의 지배적 힘이 사라진 것을
슬퍼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하는지?)
. . .

시간은 언제나 시간이며
공간은 언제나 공간이며 공간일 뿐
실제하는 것은 한 때
한 공간에만 실제할 뿐이기 때문에
나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기뻐하며
복 받은 얼굴을 포기하며
목소리를 포기한다.
. . .

그리고 우리에게 자비를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나 자신과 지나치게 토론하고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설명하려 드는
이 문제들을 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 .

T. S. Eliot
Translated by Gene

Sunday, December 21, 2008

Capitalized Common Nouns: Divinity

영어에서 신성을 표시하는 일반 명사나 대명사는 대문자로 시작한다. 아버지를 소문자가 아닌 대문자로 시작해서 Father 로 쓰면 그것이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 아버지'임이 표시된다. 간단한 문법적 '약속'이지만 문예 텍스트의 번역에서는 간혹 난점을 제시할 제기할 때가 있다.

아나 악흐마토바 안나 아흐마토마 Anna Akhmatova
의 "레퀴엠" 중에서 '못박힘'이라는 시는 한 좋은 예를 보여준다.

Crucifixion

"Do not weep for Me, Mother,
I am in the grave."


1
A choir of angels sang the praises of that momentous hour,
And the heavens dissolved in fire.
To his Father He said: "Why hast Thous forsaken me!"
And to his Mother: "Oh, do not weep for Me..."

2
Mary Magdalene beat her breast and sobbed,
The beloved disciple turned to stone,
But where the silent Mother stood, there
No one glanced and no one would have dared.


못박힘

"저로 인하여 울지 마세요, 어머니,
저는 무덤 속에 있음이니다."


1
천사의 성가대는 그 중요한 시간의 찬양을 불렀고
하늘은 불에 녹아들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 저로 인하여 울지 마세요..."

2
막달라 마리아는 가슴을 치며 흐느꼈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는 돌이 되었는데
말없는 어머니가 서 있는 곳, 그곳은
아무도 쳐다보지 못했다. 아무도 감히 그러지 못했으리라.

Father 를 '아버지'라고 번역해도 문맥으로 미루어 기독교의 '하나님 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아버지'라고 하면 대문자로 시작하는 Father 의 영어 문장 속에서의 자연스러움이 없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했다."만을 떼어 놓고 보면 '아버지'에서 신성神性을 알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Mother -> 어머니' 그리고 'He, Me -> 그 (예수), 저' 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명칭들에 신성神性을 실을 수 있는 말, 그래서 문맥에서 분리시켜 놓아도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았음을 표시해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이 일반적인 낱말의 뜻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영어에서는 어형 morphology, 즉 문법 범주 grammatical category 에서 가능하지만 한글의 경우는 다르다. 따라서 어휘 범주 lexical category 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방향을 세우고, SL Source Language 의 어의語義 lexical meaning 를 가진 단어나 문구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을 것이다.

Father -> 성부聖父, or 하나님 아버지.
Mother -> 성모聖母, or 성모 마리아.
He, Me -> 성자聖子, or 예수. ('Me': 1인칭 목적어의 경우, '저', '나'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자人子라는 말을 써서 3인칭으로 자신을 일컫도록 번역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위의 번역 초고는 수정을--앞으로 여러 번 있을지 모를 수정을--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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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Akhmatova
(1889-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