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26, 2009

문화의 차이에 따른 연어 관계의 변화

간혹 어떤 번역자들은 때론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의미의 정확함 혹은 번역자 자신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을 선택해서 번역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사코 원작 텍스트에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재생해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느끼는 번역자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원작 텍스트:

KOLESTRAL-SUPER is ideal for all kinds of hair, especially for damaged, dry and brittle hair.

역逆번역 (위의 텍스트에 대한 아랍어 번역을 다시 영어로 옮김):
Kolestral-super is ideal for all kinds of hair, especially for the split-ends hair, harmed or damaged hair and also for hair which is dry, of weak structure or liable to breaking.

영어에서 hair 와 연어를 이루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dry, oily, damaged, permed, fine, flyaway, brittle 등등. 이들 연어들은 영어권 나라의 문화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말들이다. 대다수 영어권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가늘고 가벼우며 잘 손상되는 축이다. 아랍어에서 ‘split-ends’, ‘dry’, ‘oily’, ‘coarse’, ‘smooth’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이 ‘hair’ 와 연어를 이룬다. 이 연어 관계는 아랍어권의 문화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아랍어에는 ‘damaged hair’‘brittle hair’ 와 유사한 구절이 없다. 그럼에도 위에 든 예문의 번역자는 원작 텍스트에 담겨 있는 의미의 모든 양상을 그대로 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는지, 원작 텍스트의 연어 구절들이 그대로 아랍어로 옮겨졌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번역을 했다. 아랍어 번역에서 표현된 부자연스러운 연어 구절과 길어진 설명은 아랍어 독자들에게 별로 의미가 없는 말들이다. 게다가 ‘damaged hair’‘brittle hair’ 같은 말들이 아랍의 일반인들에게 문제로서 비춰지는지도 의문이다. (Baker, 1992: 61)

그렇다면 예문의 광고 문안은 Kolestral-super is ideal for all kinds of hair, especially for the dry, split-ends hair. 정도로 번역되었으면 족하다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이것이 아랍인들에게 두발의 문제라고 인식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이 광고 문안이 설명하는 제품은 아예 처음부터 아랍인의 두발 미용과는 상관이 없든지, 있더라고 광고문안이 새로이 작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부터는 번역자의 소관을 넘어서는 문제일 것이다.

같은 예문을 한글로 번역한다면 콜레스트랄 수퍼는 모든 유형의 머리카락에 이상적이며 손상된 머리카락에 특히 좋습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머리카락은 굵어서 파마로 인해서 손상되거나 기름기가 빠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손상되지 않는다. 백인의 머리카락은 대개 건조하고 가늘고 가벼워서 풀풀 날리며 동양인이나 흑인의 머리카락보다 잘 손상되는 축에 속한다.

번역을 함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깊이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언어의 표면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임할 경우, 번역어 독자에게 생경하고 잘 와닿지 않는 번역이 될 소지가 많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문이다. 언어 외적인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문화에 관한 지식, 다루어지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Wednesday, February 25, 2009

정확함과 자연스러움 사이의 갈등 (2)

앞선 포스트에 대한 예를 하나 살펴보겠다. 정확함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선택한 번역에 관한 것이다. 추가 설명을 보탬으로써 텍스트가 어수선하게 되거나 혹은 어색한 연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 의미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다.

원작 텍스트:
New Tradition offers a fascinating series of traditional patterns in miniature using rich jewel-like colours that glow against dark backgrounds.
(뉴 트러디션은 어두운 배경에서 빛을 발하는 선명한 보석 색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문양의 매혹적인 축소판 시리즈를 내어놓습니다.)

역逆번역 (위의 텍스트에 대한 아랍어 번역을 다시 영어로 옮김):
The ‘New Tradition’ collection presents a number of fascinating designs in a reduced size, in dazzling colours like the colours of gems, the glowing of which is enhanced by the dark backgrounds.
(뉴 트러디션 컬렉션은 다수의 매혹적인 디자인의 축소판을 보석 색 같은 눈부신 색상으로 선보입니다. 이 색상은 어두운 배경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Rich colours 는 선명하고 짙다. 아랍어의 연어 구절은 색의 농도보다는 밝은 정도를 나타낸다. (Baker, 1992: 57)

원작 텍스트에서 연어 관계를 이루는 구절에 대응하는 구절을 번역 텍스트에서 찾을 수 없을 때 내려야 하는 선택이다. 번역 텍스트가 쓸데없이 길어지거나 어수선하게 되더라도 설명하는 식의 번역을 해서 정확성에 치중할 것인지, 아니면 해당 구절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주는 것이 문맥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으므로 번역어에 자연스러운 구절로 의미의 일부만 살려서 간결하게 처리해줄 것인지 판단해서 내릴 선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린 선택의 결과를 두고 부실 번역이나 오역 시비를 거는 것은 곤란한 것이다.

Monday, February 23, 2009

정확함과 자연스러움 사이의 갈등 (1)

(지리멸렬한 세태! 실패를 하더라도 좀더 폼나게 실패하기 위하여 오늘도 . . .
I will ever try. I may fail again. But I will fail better.)

번역자라면 누구든 번역을 할 때 원작 텍스트의 연어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 그 의미를 살리려고 애를 쓸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 의미를 십분 살려 놓지는 못한다. 그 의미의 차이는 주어진 문맥 속에서 볼 때 아주 미세할 수도 있지만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a good/bad law’ 는 보통 ‘a just/unjust law’ 로 번역된다. 이 의미의 차이가 중요하고 안 하고는, 주어진 텍스트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이 ‘공정’에 초점을 두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또 한 예로 영어의 ‘hard drink’를 아랍어로 번역할 때 아랍어의 가장 가까운 말은 ‘alcoholic drinks’ 라는 연어를 이루는 말이다. 그런데 영어에서 ‘hard drink’는 위스키나 진과 같은 독한 술을 의미하며 맥주나 셰리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랍어에서 ‘alcoholic drinks’ 는 독한 술은 물론이고 맥주나 셰리 등 알코올을 함유하는 모든 음료를 가리킨다. 아랍어에서는 영어의 ‘hard drink’ 와 대등한 연어구連語句가 없다. 번역자가 ‘hard drink’를 전형적인 아랍어의 연어구로 옮기거나 혹은 그 의미를 분명히 살리기 위해서 연어 관계에 있지 않은 말을 사용하여 풀어서 번역한다든지 하는 결정은 원작 텍스트의 문맥에서 ‘hard drink’ 와 ‘soft drink’ 의 구분이 중요한지 아닌지 혹은 문맥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에 달린 문제다.

어느 정도의 의미의 상실이나 보탬이 불가피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언어마다 서로 구성 체계가 다른 까닭이다.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좀 달라질 경우, 이것을 받아들이고 말고의 여부는, 이 변화가 주어진 문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Baker, 1992: 56-57)

관련 언어에 대한 이해가 번역에 필수적인 전제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번역이론에 대한 개관과 이해도 균형 잡힌 번역을 위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도구다.

Saturday, February 21, 2009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 Samuel Beckett

Friday, February 20, 2009

그레고리 라밧사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그의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번역자들에게 그가 한 말을 옮기지 말고, 그가 전달하고자 한 것을 옮기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생각해볼 점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이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A drum! a drum! Macbeth doth come.

그런데 이 우렁찬 외침이 불어 번역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힘없이비실거린다.
Un tambour! un tambour! Macbeth vient.

번역자는 이런 부분에서는 이 부분에서 재량이나 창의성을 발휘했어야 했다. 셰익스피어가 전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그 정신을 살려주도록 말이다.

보르헤스가 한 말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점도 또한 생각해볼 수 있다. 베를렌이 바이올린의 구슬픈 소리를 모방해서 “Les sanglots longs des violons de l'automne."라는 문장을 썼다. 이 문장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비음을 가진 말이 - 트롬본 소리라면 모를까 - 영어에는 없다. 그럼 번역에서 악기 자체를 트롬본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 편이 번역의 본질에 더 합당한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Sunday, February 15, 2009

그레고리 라밧사 (2)

독자의 경험은 독서에 영향을 미친다. 독자로서의 번역자도 예외일 수 없다. 사람들마다 모두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히 좋아하는 말이 있다. 경험이나 환경, 환경이 서로 다르고 혹은 교육을 통한 선호가 또 교육의 영향으로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 많이 사용된 특정한 낱말이나 표현을 표현이 너무 많이 쓰여서 고쳐 써야 할 때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어떤 분위기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내 자신의 경우, 월요일에 사용한 단어를 화요일에 다시 보고 마음에 안 들어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가 수요일에 다시 원래 선택했던 단어로 되돌려놓기도 한다.

이 끊임없는 바꿈은 변경은 처녀귀신처럼 번역자들을 번역자에게 처녀귀신처럼 따라다닌다. 들러붙는다. 내 생각에 완성된 번역이란 없다. 일단 매듭지어 놓은 번역은 폐쇄되어 있지 않고 열려 있어 끊임없이 개고될 수 있다. 번역에 선택된 언어는 원저자의 언어만큼 확고하지 않은 까닭이다. 번역자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자는 자신이 선택한 번역어가 가장 좋은 선택인지 100%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번역해서 출간된 근사한 책을 받을 때마다 언제나 괴로운 심정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표지를 보면 마음이 흡족하지만 책을 펴서 읽어보면 첫 페이지부터 갈등이 일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번역하지 않고 저렇게 번역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갈등이다. 나는 내가 번역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지 않는다. 첫 페이지부터 그런 갈등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으면 너무 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나 논리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라도 내가 선택한 어휘나 표현에 대해 내 스스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한 어휘나 표현 등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느냐는 의문은 없어지지 않는다. 원작은 영원히 영광 속에 행진을 계속하지만 오래된 번역서는 자꾸 새롭게 번역해야 하는 번역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Thursday, February 12, 2009

그레고리 라밧사 (1)

(그레고리 라밧사 Gregory Rabassa 의 이야기 중에서 생각해볼만한 부분들을 발췌해본다. 라밧사는 마르케즈의 Cien años de soledad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를 영역한 장본인으로 영어권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한 번역가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두고 마르케즈가 자신의 원작보다 마르케즈는 영어 번역 작품이 번역이 자신의 스페인어 원작보다 더 훌륭하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라밧사는 컬럼비아 대학 Columbia University 과 뉴욕 시립대학 CUNY, Queens College 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에 라밧사의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과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라밧사는 1970년 ‘백년 동안의 고독’에 대한 번역료를 인세로 받지 않고 글자 수(매절)로 받았다. 영역본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판매량은 극히 저조했다. 그런데 그러나 마르케즈가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고 이 책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급증하자 급증했으며 이로 인해 약간 배가 아팠었다는 얘기를 그의 라밧사의 회고록에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글은 그의 회고록에서 발췌한 글이 아니다. 회고록 If This Be Treason (2005) 에 나오는 글이 아니고 The Craft of Translation (1989) 에 나오는 글이다. 시간이 날 때 여기저기 흥미로운 부분만 조금씩 이 자리에 옮겨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이 세상에 서로 똑같은 것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희망사항이고 희망사항일 뿐이고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산수교육 탓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엄격하게 엄밀하게 비교하고 따져보면 모든 것은, 생물이든 아니든 간에, 서로 아주 많이 닮았을지라도 개별적으로 철저하게 독특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알파벳의 첫 글자를 배우고 덧셈을 배우기 시작했고, 셈하는 것, 즉 2 +2 = 4 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고부터 줄곧 그와 같은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 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한다. 2 + 2에서 두 번째 2가 첫 번째 2보다 조금 더, 아주 조금 더, 새롭기 때문에 2 + 2 = 4 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언어를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한 언어에 속한 단어가 다른 언어에서 등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요즘의 수학자들은 그들의 선배들보다 좀더 신중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취한다. ‘동일하다’라는 말 대신에 ‘접근한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빈번해진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번역은 원작과 동일할 수 없고, 다만 원작에 접근할 뿐이다. 그리고 정확성과 관련하여, 번역의 우수성은 그 번역이 원작에 얼마나 가깝게 접근하고 있느냐에 의해 평가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