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번역가 안시아 벨(b. 1936)의 번역 이야기에서 흥미롭거나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우리말로 옮긴다. 시간 나는 대로 매일 조금씩 번역해서 올릴 것이다.
Regenroman 의 영역본 제목은
Rain 이다.
두운頭韻이나 분위기 면에서 두운을 보나 소설의 분위기를 보나, Rain 보다 더
독어 원작의 제목과 어울릴 제목이 없었겠지만, 나는 아직도 원작의 제목이 좀 약해진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분위기가 - 비유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분위기가 -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각 장의 제목은 일기예보에서 쓰는 말이다. 내가 출판사에 제안한 제목은
A Rainy Story 이다. 하지만 나는 내게 제목을 생각해내는 특별한 재주가 없음을 잘 안다.
그뿐 아니라 기실 나는 내가 번역할 책의 원제가 고유명사일
경우, 나는 안도의 숨을 때는 안도의 숨마저 쉰다. W.G. 제발드의 “아우슈털리츠
Austerlitz”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 . . 제목이 고유명사일 경우에는 번역자로서나 번역서 출판사로서나 별문제가 없다.
원제가 고유명사가 아니고 노래의 제목인, 카렌 두베
Karen Duve 의
Dies ist kein Leibeslied (
This Is Not A Love Song)의 경우에도 별문제가 없다. 나는 이 책을 2004년 5월에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강의 초고 작업만
해놓았을 해놓은 시점에서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세미나의 참석자들은 내가 그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책의 내용에 나오는 1970년대의 독일 팝송 가사 중 특정 부분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내게 물었다. 그러나 나는 대강의 초고만을 마쳤기 때문에
정확한 똑 부러진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번역자들은 저마다 번역자마다 제각기 모두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 있다. 내 방식은 먼저, 최대한 빨리,
첫 대충 초고를 끝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1차 개고와 2차 개고는 좀더 천천히 진행한다. 내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초고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의문 사항이나
문제점들은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이 나중 부분에서 나중에 그 해답이 주어지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번역자들은, 흡족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 지나간다는
초조한 생각에
조바심을 내고, 초고부터 모든 것을 다듬어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내가 아는 어떤 번역자는 번역할 책을 번역에 앞서
한번도 읽어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윌리스 반스토운
Willis Barnstone 이 그의 책 “번역의 시학
The Poetics of Translation”에서 규정한 경험을 십분 만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번역은 특정한 종류의 독서, 즉 원작 텍스트에 대한 “정밀 독서”가 되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 번역자가 번역할 책을 먼저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번역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지, 난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번역자는, 번역할 책의 장단점, 그리고 그 책이 출판사의 출간 목록에 끼어서 어울리는지 등에 관해 출판사에 소견을 말해주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번역할 책을 번역하기 전에 먼저 읽어보았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많은 경우에 그러하다. 학자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 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소설을 특별히 선호하지만 - 여러 분야의 책을 번역하는 현역 번역자로서 하는 얘기다.
카렌 두베 얘기가 나왔길래 한 마디 남깁니다. 그 책 정말 정말 재밌게 읽었었거든요. ^.^ 한국에서는 '폭우'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서 나왔었는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어요. 영역본 제목이 rain이라니, 말씀하신 것처럼 확실히 좀 약한 느낌이 있네요.
ReplyDelete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영어 번역본입니다. 네, 말씀하신대로 ‘비’ 보다는 ‘폭우’가 좋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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