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5, 2009

번역비평 (1) 수집과 정리, 그리고 체계

20여년 전 미국에 와서 접한 책 중에 Modes of Thought 가 있다. 한국에서는 유기체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의 책이다. 과거에 김용옥 교수가 백두白頭 선생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에 이 책을 접하고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거의 외우다시피 했었다. 비록 오랜 동안 이 책 자체는 잊고 살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알게 모르게 나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지배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나름 공부해온 번역 이론을 정리해보기로 하고 방법론에 대해 궁리하다가 이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번역 이론과는 직접적으로 아무런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번역론과 관련된 모든 사고와 활동에 근간 ultimate principles 이 되기에 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원문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번역을 단 다음 좀더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이 블로그에 올리는 번역은 항상 초고 상태로 올린다. 그런 뒤 다시 읽으며 눈에 띠는 것은 금을 긋고 수정했음을 표시한다.)
All systematic thought must start from presuppositions. (중략)

In all systematic thought, there is a tinge of pedantry. There is a putting aside of notions, of experiences, and of suggestions, with the prim excuse that of course we are not thinking of such things. System is important. It is necessary for the handling, for the utilization, and for the criticism of the thoughts which throng into our experience.

But before the work of systemization commences, there is a previous task - a very necessary task if we are to avoid the narrownesses inherent in all finite systems. (. . .) Philosophy can exclude nothing. Thus it should never start from systemization. Its primary stage can be termed assemblage. (중략)

In order to acquire learning, we must first shake ourselves free of it. We must grasp the topic in the rough, before we smooth it out and shape it. For example, the mentality of John Stuart Mill was limited by his peculiar education which gave him system before any enjoyment of the relevant experience. Thus his system were closed. We must be systematic; but we should keep our systems open. In other words, we should be sensitive to their limitations. There is always a vague beyond, waiting for penetration in respect to its detail.

모든 체계적인 사고는 가설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모든 체계적인 사고에는 지나치게 세목에 치중하는 현학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 . . 체계는 중요하다. 경험의 마당에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다루고 활용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체계화 작업에 앞서 먼저 해야 할 힘든 일이 있다. 한정된 체계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모든 유한한 체계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편협성을 피하고자 한다면 필히 해야 할 일이다. 철학에서는 철학은 아무것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철학은 체계화하는 데서 시작해서는 작업부터 해서는 안 된다. 철학의 제1차적인 단계는 수집(+ 정리)이라고 이름 지을 부를 수 있다. (중략)

배움을 얻으려면 먼저 그것을 [그 배움을 = 우리가 배워 알고 있던 것을] 벗어 던져야 한다. 주어지는 논제를 담론의 대상을 다듬고 정리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먼저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한 예로, 존 스튜어트 밀의 사고방식은 그가 받은 유별난 독특한 교육에 의해 제한되었다 구속되었다. 이 유별난 교육으로 인해 그는 [교육 내용과] 관련된 경험을 [있는 그대로 = 날것으로] 받아들여 다루어보기 전에 체계부터 갖추게 되었다 갖추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체계는 닫힌 체계가 되었다. 우리는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체계는 열린 체계여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체계의 한계에 민감해야 한다. 이 한계를 넘어선 곳에 우리의 의식에 [아직은] 분명히 잡히지 않은 그 무엇을 이루고 있는 세목[그 무엇을 이루는 개별적 정보 단위]이 항상 체계의 한계선을 침투해 들어오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번역을 하기 위해서 번역 이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론의 가치는 내가 하는 작업 자체, 작업 방법, 특정 방법의 선택에 대한 객관적인 반성(성찰/숙고)과 검증에 있다 하겠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반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론이 배제된 전적인 실용 교육만으로는 반성의 기능을 갖추기 힘든 것이다. 한편 번역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중립적인 - 다소 중립적인 - 도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도 이론일 것이다.

이 이론의 체계를 세우는 것은 백두 선생의 철학을 근간으로 해야겠다. 나도 모르게 잡혀 있는 나의 체계, 번역관을 허물고 편견 없는 수집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이 블로그에도 반영하기로 한다.(계속) 번역에 대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형성되어 있는 체계를 허물고 수집을 하는 공간으로 이 블로그를 이용하기로 한다.

언어학, 번역 이론, 번역 비평으로 구분하여, 혹은 혼합하며, 수집하는 블로그가 될 것이다. 먼저는 결과를 바라보며 반성을 하기 위함이요, 그 다음은 반성의 결과를 딛고 나아가기 위함이다. 수집과 실험으로 형성되는 체계가 없으면 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믿는다. 열려 있기 위해서 공개적인 블로그는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몇 안 되겠지만 혹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 주는 독자가 보정 역할을 해주며 닫힌 체계가 되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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