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9, 2009

쉬어 가기

번역 텍스트만을 가지고 하는 번역 평가에는 어떤 한계가 있으며 번역 텍스트와 원작 텍스트를 대조할 때는 원작 텍스트 자체에 대한 평가도 갖추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앞서 해보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서 단토의 텍스트에 대한 논쟁을 예로 삼아보았다. 그것으로 그와 관련된 모든 문제점이 전부 해소된 것은 물론 아니다. 오역 혹은 부실한 번역 문제와 관련해서 빙산의 일각만을 건드리고 만 셈이다.

어쨌든 원작 텍스트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명확한 텍스트에 대한 책임이 1차적으로 번역자에게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는 편집자 copyeditor 에게 있을 것이다. 번역 텍스트를 읽고 자체 내에 일관성이 없거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잡아내고 번역자에게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 관해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는 편집자도 자유하지 못한 것이다.


번역자는 자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부단히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별로 세운 것은 없어도 허물기 위해 번역비평을 생각해보고 있다. 나는 이 블로그를 사적인 블로그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어법 oxymoron 이라는 사실 또한 깊이 인식하고 있다. 나의 생각을 인터넷에 올릴 때는 누군가 읽으리라는 것을 예기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그래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수, 그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블로그에 내 생각을 올린다면, 과연 이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인가? 나는 아닌 것 같지만 혹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번역이론에 대해서 지속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장치. . . 시간이 없거나 귀찮아도 지속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장치라고 우겨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혼자 공책에다 끄적거리는 것보다는 강제적인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또 이 생각한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무슨 일에든 개선하고 발전하기 힘든 법이다. 나는 부단히 허문다. 한편, 세우는 것이 없으면 허물 것도 없는 법 - 따라서 나는 부단히 세우며 허물고 있다.

책을 번역해가며 나타나는 난점이나 재미있는 점들을 기록해두고 또 필요시 나중에 공개하기 위해 시작하였지만, 번역의 이론과 실제를 두루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번역 비평의 준거를 살펴보고 있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이지만 재미는 없다.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든지. . . 아니면 제발트나 벤야민도 고독할 테니 그들과 얘기나 나눌까. . . 아니면 워즈워드에게서 위로를. . .

별이 빛나는 밤
호수는 곱고 아름다우며
햇빛은 찬란하게 탄생하지만
어디를 가든 이 땅에서
찬란함이 사라졌음을
나는 안다
(. . .)

번역 © Gene Ghong

Waters on a starry night
Are beautiful and fair;
The sunshine is a glorious birth;
But yet I know, where'er I go,
That there hath passed away
a glory from the earth.

윌리엄 위즈워드의 송시에서
Trans.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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