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원작 텍스트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명확한 텍스트에 대한 책임이 1차적으로 번역자에게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는 편집자 copyeditor 에게 있을 것이다. 번역 텍스트를 읽고 자체 내에 일관성이 없거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잡아내고 번역자에게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 관해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는 편집자도 자유하지 못한 것이다.
번역자는 자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부단히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별로 세운 것은 없어도 허물기 위해 번역비평을 생각해보고 있다. 나는 이 블로그를 사적인 블로그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어법 oxymoron 이라는 사실 또한 깊이 인식하고 있다. 나의 생각을 인터넷에 올릴 때는 누군가 읽으리라는 것을 예기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그래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수, 그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블로그에 내 생각을 올린다면, 과연 이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인가? 나는 아닌 것 같지만 혹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번역이론에 대해서 지속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장치. . . 시간이 없거나 귀찮아도 지속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장치라고 우겨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혼자 공책에다 끄적거리는 것보다는 강제적인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또 이 생각한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무슨 일에든 개선하고 발전하기 힘든 법이다. 나는 부단히 허문다. 한편, 세우는 것이 없으면 허물 것도 없는 법 - 따라서 나는 부단히 세우며 허물고 있다.
책을 번역해가며 나타나는 난점이나 재미있는 점들을 기록해두고 또 필요시 나중에 공개하기 위해 시작하였지만, 번역의 이론과 실제를 두루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번역 비평의 준거를 살펴보고 있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이지만 재미는 없다.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든지. . . 아니면 제발트나 벤야민도 고독할 테니 그들과 얘기나 나눌까. . . 아니면 워즈워드에게서 위로를. . .
Waters on a starry night
Are beautiful and fair;
The sunshine is a glorious birth;
But yet I know, where'er I go,
That there hath passed away
a glory from the earth.
윌리엄 위즈워드의 송시에서
Trans. Gene
Are beautiful and fair;
The sunshine is a glorious birth;
But yet I know, where'er I go,
That there hath passed away
a glory from the earth.
윌리엄 위즈워드의 송시에서
Trans.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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